그 가능성은 이미 떠올렸다

저자 이노우에 마기  /  번역 이연승


제목부터 기존의 미스터리 소설과 다른 느낌을 주는 이 작품은 그 내용도 기존 미스터리와 다르다. 

일반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을 탐정역의 인물이 여러 증거를 조합해 진상을 밝혀내는 것이 기존의 미스터리였다면, 이 작품은 그 반대다. 다른 사람이 제시한 진상을 논리로 파괴하여 결과적으로 이 사건은 '기적'이라고 주장한다.


기존 미스터리와 확연히 다른 점을 드러내듯 무게감도 좀 더 가벼운 느낌이다. 등장인물도 몇 줄 읽으면 파악될 만큼 단순한 성격인데 극의 진행 방식도 각 장마다 비슷하다. 읽다 보니 어느 RPG 게임이 떠올랐다... 가볍다는 것은 장점이 될 수도, 단점이 될 수도 있는 만큼 그냥 작품의 특징으로 보면 좋을 것 같다.


다 읽고 생각해보니 딱히 이렇다 할 반전의 요소는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기존 미스터리의 틀과 다르다는 점은 기억에 남았지만 트릭이라든지 뒤통수를 때리는 얼얼함은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


새로운 관점이라는 점은 좋게 평가할 만하지만, 작가 역시 익숙한 관점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술술 읽히지는 않았다.

단순히 비유하자면 그동안 에스프레소만 먹었는데 여기에 이거저거 타서 먹어보니 새로운 맛이 났다고 할까. 설탕을 한 움큼 타서 먹으니 달달하니 잘 넘어가고, 우유를 부어 보니 부드러우면서 고소한 맛까지 나지만 아직 비율이 제멋대로인 셈이다. 어느 부분은 우유를 너무 부어서 커피 향만 은은하게 나고, 어느 부분은 설탕인 줄 알았는데 소금을 탔다.

그래서 이 시리즈의 다음 작품이 어떻게 비율을 맞추어 미스터리의 정식 메뉴가 될지 기대된다.


-스포일러 주의-

사족을 하나 달자면 발전기 효율을 60%로 계산하는 내용이 있는데 발전기 타입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아무리 좋게 잡아줘도 30%면 굉장한 효율이다. 게다가 냉동고의 사용 전압에 맞게 변압기도 거쳐야 하니 또 손실 발생. 다 무시하고 30%로 잡고 계산하면 당연히 전기 생산량은 60%로 계산했을 때 보다 1/2 수준. 8시간 일하면 16시간분의 전기가 생산된다고 하지만 이렇게 되면 8시간 일해도 8시간분의 전기만 생산된다. 즉, 만들자마자 다 써버린다. 이래서는 하루종일 24시간 전기를 생산해야 한다. 밥도 전기를 생산하며 허겁지겁 먹고, 용변은 그냥 서서, 잠시 짬을 내서 다른 곳을 가지도 못한 채 졸린 눈을 비빌 손조차 돌을 나르며 전기 생산에 매진해야 냉동기가 꺼지지 않는다. 탐정이 이 점을 먼저 지적했으면 추기경의 무한 회랑의 덫에 걸리는 일 없이 끝났을 것이다.

모종의 방법으로 60%의 효율로 전기를 만들어 8시간분의 전기가 남아 있을 때 쉬고 싶지만, 난관은 또 있다. 기껏 만들어낸 8시간분의 전기는 교류다. 교류는 저장이 안 된다. 축전지에 저장해야 하는데 축전지는 직류다. 결국 정류기를 이용해 직류로 바꿔서 충전해야 한다. 그런데 냉동고에 전기를 공급하려면 저장한 전기를 다시 교류로 바꿔줘야 한다. 인버터를 설치해 직류를 교류로 바꾸며 냉동고를 가동한다. 변환할 때마다 애써 만든 전기의 변환 손실이 발생한다. 평소에 전기는 냉동고 이외에는 사용하지 않았으니 이런 장비들은 없었을 터. 다른 사람 눈을 피해 정류기, 축전지, 인버터도 새로 구입해야 한다. 이렇게까지 하느니 차라리 몰래 가정용 비상 발전기를 사서 냉동고를 연결하는 방법이 더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