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 워크

저자 스티븐 킹  /  번역 송경아


히가시노 게이고와 비슷한 공장장급 다작 작가 스티븐 킹이 리처드 바크만이라는 필명으로 출판했었던 작품이다. 평론가들이 스티븐 킹을 까 내리자 예전에 쓴 작품을 손 봐서 리처드 바크만으로 발표했더니 극찬을 했다는, 원효대사 해골물을 제대로 먹여준 작품 중 하나다.

스티븐 킹의 소설들은 다른 작품과 연계된 내용이 조금씩은 있는데 리처드 바크만으로 발표해서인지 그다지 관련된 부분은 없는 것 같았다. 미국이 파시즘에 물든 세계이므로 세계관 자체가 달라서 그런 것 같다.

역시 초능력자나 미스터리한 사건들이 빠지기 어려운 스티븐 킹의 여느 소설과 달리, 상식적인(?) 전개로 진행된다. 비슷한 콘셉트로는 헝거게임이나 배틀 로얄 정도인데 롱 워크가 이들 작품과 다른 점은 참가가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다른 사람을 죽이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시작할 때 몇 페이지만 빼놓으면 주인공과 다른 참가자들은 계속 걷는다. 걷는 게 느려지거나 주저앉거나 기절하거나 도망가려 해도 세 번의 경고 뒤에는 사살되고, 끝까지 남는 최후의 한 명만 소원을 들어주는 서바이벌 걷기다. 

헝거게임이나 배틀 로얄같은 작품에 익숙해진 사람이라면 조금 지루할 수도 있다. 그런 작품처럼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장면은 전혀 없고 참가자들의 얘기로만 사건이 진행된다. 각자 참가하게 된 이유, 자신과 가족들의 이야기 그리고 우승하고 나서 계속될 - 하나를 제외하고 99개의 거짓말이 될 - 꿈에 대해서. 옆의 참가자가 죽어야만 내가 이기지만, 주저앉거나 힘들어하는 참가자를 포기하지 않게 애써 일으켜 세우며 걸어간다.

스티븐 킹 특유의 분위기를 좋아한다면 글쎄, 약간은 재미없을 수도 있겠다. 사악한 어떤 존재의 음험한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여기에 맞서는 나약하고 평범한 사람의 선량하고 굳센 의지 같은 건 이 책에 없다. 다만 군사정권의 관심 돌리기 쇼와 그에 열광하는 비인간적인 관중들 속에서 잘못된 참가를 한, 신기루 같은 희망을 잡고 싶었던 소년들의 얘기다.


오래 걷다보니 문장이 뒤죽박죽인 건지 그냥 번역이 좋지 않은 건지 글이 매끄럽게 읽히지 않았던 게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