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스웬슨 시리즈



 

표지에 코지 미스터리라고 쓸 만큼 코지 미스터리가 뭔지 잘 보여주는 시리즈다. 

코지 미스터리라는 말 자체가 생소할 수 있는데 일상 미스터리 정도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흔히 미스터리에 자주 표현되는 끔찍하거나 성적 묘사가 거의 없다시피 하면서 잔잔하고 평온한 느낌의 미스터리라고 생각한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고전부 시리즈(애니메이션으로는 빙과)를 생각하면 딱이다.


이 작품이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은 캐릭터가 잘 잡혀있다는 점이다. 캐릭터들의 성격이 분명하고 서로 간의 입체적인 관계들이 시리즈가 거듭 될수록 잘 정립되면서 자연스레 등장인물들에게 몰입하게 된다. 또한 노련한 주변 묘사로 가보지도 않은 미국의 한적한 시골마을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해 준다. 현재 한국에 번역 출간된 작품만 19권이나 되는데 아직까지 계속 이 책에 관심이 가는 것은 이런 친근감이랄지, 익숙함인 것 같다. (외전 제외, 2018.08 기준) 이를 테면 전원일기 느낌이랄까.

다른 장점으로는 미스터리 말고도 볼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대개 미스터리는 한 가지 사건이 발생하고 대부분 그 사건을 해결하거나 범인을 밝히는 데에만 중점을 두지만 이 시리즈는 두 남자 중 누구와 결혼할지에 대한 연애적 요소 및 주인공 한나가 기르는 고양이 모이쉐의 특이한 행동 등 여러 사이드 스토리들이 계속 긴밀하게 이어져 있다.


하지만 아무리 코지 미스터리라도 풀어야 할 사건이 있는 법. 게다가 제목을 XX 살인사건이라고 지은 이상 매 책마다 한 명 이상의 사람이 죽어나간다. 그리고 그 시체들의 첫 발견자는 몇 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주인공 한나. 책에서도 살인 레이더라고 언급될 정도다. 물론 김전일이나 코난을 따라가기에는 사건 수가 한참 모자라지만 말이다.

범인을 밝혀나가는데 특별한 추리를 발휘하거나 하진 않는다. 주변 인물들 중 원한 관계나 이익 관계가 있는 사람을 조사하고 그들의 알리바이를 확인하거나 확실한 동기를 찾는데 주력한다. 경찰이 심문해도 말하기 곤란한 내용이거나 지인이 아니면 모를 만한 과거 일들을 인맥, 친목 등을 동원해 알아가고 용의자 리스트에서 하나씩 제거하다가 막판에 범인을 찾게 되는 구성으로, 거의 매번 똑같아서 질릴만한 패턴이다.


그래도 이런 질리는 패턴에서도 범인을 짠 하고 밝혀 내면 속이라도 시원할 테지만, 단순히 한나가 몇 가지 물어보기 위해 만난 범인은 도둑이 제 발 저리다는 말처럼 '이미 다 알아버렸으니 죽여버리겠다'라는 살인범 치고는 간이 작고 무계획적인 범인이 대다수이며 게다가 이들은 모두 수다쟁이들이다. 한나가 알아내지 못한 진정한 동기라던가 살해 수법, 피해자와의 관계 따위를 친절하게도 묻는 대로 알려준다. 너무 친절하다 못해 어이없는 장면도 연출되는데 한나가 잘 알아듣지 못한 것 같다고 다시 얘기해달라고 하자 전혀 화내는 기색 없이 범인이 다시 요약해서 말해주기도 한다. 


소설이고 설정이므로 탓해서는 안 되겠지만, 작은 마을 치고는 살인 사건이 엄청 발생하는 것도 꽤 의심스러운 일이다. 작중에 4개월째 스웬슨 가의 누구도 시체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놀라는 신문기사가 나오는 부분도 있으니 적어도 4개월 마다 한나와 관련된 살인 사건이 있다는 말이다. 


이런 부분에 대한 관심보다 한나와 두 명의 남자 사이의 로맨스에 포인트를 두고 보려고 해도, 갈수록 태산이란 말처럼 최근에 나온 작품에서 대부분의 독자들을 한숨 쉬게 만드는 일이 있었다. 사실 로맨스는 내가 중점을 두고 보는 부분이 아니었고 별로 관심도 없었지만 거의 열일곱 권 정도 이어온 남자 고르기에 대한 답이 참으로 엉뚱하게 결론지어졌다. 엄청나게 큰 네타가 될 수 있으니 언급은 안 하겠지만 읽는 내내 좀 당황스러웠다. 



강력한 장점도 있고 치명적인 단점도 있는 애매한 작품이다. 치명적인 단점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하는 것은 중반 이후부터이니 만약 코지 미스터리가 어떤 것인지, 어떤 매력이 있는지 알고 싶다면 초반의 몇 권정도는 추천하지만 정통 미스터리나 본격 미스터리를 선호한다면 가급적 피하는 게 좋다. 잡식성이라면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